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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탱고의 역사
BY apple0 2021-07-16 11:10:06
3 191 0


현재 지구촌의 사람들은 인종, 나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탱고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탱고에 열광하는 것 일까요?

 

이번엔 탱고의 역사 대해서 소개해 보려고 해요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지금까지 탱고라 하면 아르헨티나 탱고를 지칭하는데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신청하여

2009년 'Tango'로 등재되었습니다.

 

이는 탱고가 처음 발생할 때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국경부근에서 발생해

우루과이 역시 탱고 탄생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의 라보카지구 위치> <라보카 지구 곳곳에서 탱고쇼를 감상할수 있다><라보카 지구 거리 현재 모습 >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라 보카 (La Boca)지구는 탱고의 발상지입니다.

탱고는 라틴어로 '만지다 가까이 다가서다' 라는 뜻으로

원어 발음으로는 '땅고'에 가깝습니다.

19세기 후반 아르헨티나의 라보카는

가난한 이민 노동자들로 북적였습니다.

하루의 고단한 일을 끝내고 뒷골목 선술집에 모여든 그들은

피곤함과 향수를 달래기 위해 먹고 마시며 여인들과 어울려 정열적인 춤을 추곤 했는데

이것이 아르헨티나 탱고의 시작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이민자들의 나라'로

탱고는 그들의 삶의 일부이자 아르헨티나 역사의 중요한 부분이지요

 

 

 


 <깐돔베>                                                < 하바네라>                                            < 빠샤다 >

 

 

 

조금 자세히 들여다 보면

1800년 대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는 아프리카 노예가 엄청나게 많았다고 합니다.

이들을 통해 아프리카 전통음악인 깐돔베(Candombe)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전파되고,

 

1850년경 역시 흑인 노예들로부터 유입된 쿠바의 수도 아바나의 춤, 하바네라(Habanera),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목동 가우초들의 음악 빠샤다(Payada)

 

크게 이 세가지 춤과 음악이 섞여서 밀롱가(Milonga)란 음악과 춤으로 발전합니다.

 

`밀롱가(Milonga)'는 19세기의 마지막 20년 동안에

부에노스 아이레스 빈민 지역에 성행한 2박자의 음악과 춤이었습니다.

 

후반에 쿠바의 선원에 의해 아르헨티나로 건너간 `하바네라'가

아프리카 노예의 후예들이 중부 아메리카에서 남부로 이동해 들어오면서 만든 음악인

칸돔베(Candombe)와 결합하면서,

하바네라의 우아함이 사라지고

칸돔베의 강한 리듬과 빠른 템포의 형태를 지닌 밀롱가로 재탄생된 것입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흑인지역과 우루과이에서 연주되고 춤추어진 칸돔베는

매우 곡예적이고 남녀가 떨어져서 추는 춤이었습니다.

 

하바네라와 칸돔베가 융합 된 밀롱가가 생겨나 유행되던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16세기 스페인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흑인들이 많이 살던 지역입니다.

 

이 지역의 주인인 팜파스를 지배하던 인디오 가우초(Gaucho)들에 탈영병들이 합류하기 시작하였고,

아르헨티나의 통일 대통령이 된 훌리오 아르헨티노 로카 장군은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이 지역의 원주민 가우초들을 몰아내고

새로운 목장과 농장을 세우게 됩니다.

그 결과, 아르헨티나는 경제적인 급성장을 이루고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여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이민자의 절반을 이탈리아인들이 차지합니다.

 

1880년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빈민지역 춤인 밀롱가는

새로운 세대의 전환에 앞서 오늘날과 같은 완전한 탱고의 면모를 갖추며 변화 해갔고

1870년대에 탱고를 완성시키는데 기여한 것은

인디오와 니그로 그리고 스페인의 혼혈인 가우초의 후예 콤빠드리토(Compadrito)들입니다.

이들은 1870년대 말 밀롱가를 바탕으로 해서 탄생한 새로운 춤과 음악을 `탱고'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역설적인 것은 흑인들이 춤을 추는 장소를 부르는데 썼던 탱고라는 용어를

콤빠드리토들은 밀롱가가 변화된 춤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탱고를 추는 장소를 `밀롱가'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츨처_ 구글 이미지>

 

하층만의 문화라며 탱고를 멸시하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중산층과 상류층은,

탱고가 파리에서 굉장한 인기를 얻게 되자

서서히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이 생겨납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도

중, 상류층의 아르헨티나인들은 탱고를 추지 않았으나,

결국엔 탱고를 잘 추는 것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는 척도가 되죠.

 

새로운 감각의 현란하고 고도로 에로틱한 춤이었던 탱고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하층계급의 소굴에서만 추어졌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춤의 형태가 약간 품위 있게 변화 합니다.

 

탱고는 서서히 적응되어갔고 에로틱한 요소들이 버려지거나 완화되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보다 고상한 `아르헨티나 탱고(Argentine Tango)'가 탄생되었고,

이것이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재유입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탱고는 지구 단위로 본다면 부에노스 아이레스라는 불과 한 점에서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의 음악과 춤, 문화가

약 1세기 동안 그 당시 가장 고달픈 삶을 살고 있는 노예들,

이주자들, 사회 빈곤자들의 희노애락이 융합하여 생긴 결과물인 셈입니다.

초기의 탱고 모습은 상대적으로 좀 더 거칠고 투박하죠.

탄생 이후 약 140년의 시간 동안 탱고는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 날의 강렬하고, 정교한 테크닉을 요구 하지만

따뜻하고 우아하면서도 화려한 동작들로 완성됩니다.

 

옛 모습과는 조금 달라졌지만

탱고는 그 옛날 삶의 고달픔,

고향에 대한 그리움,

멀어진 그 사람에 대한 아픔을 지금도 변함 없이 달래줍니다.

 

그리고 전 세계로 퍼져나가 우리를 조용히 안아줍니다.

 

 


 

원문

https://blog.naver.com/soosunwhoa5/222174510530

 

<본문 내용 참고 발췌_ 사이트>

https://m.blog.naver.com/mofakr/220897745380

http://www.dancingspider.co.kr/rb/?c=2&uid=8628

http://www.dancetheory.pe.kr/dance/library/10argentine.htm

https://m.blog.naver.com/kamsha/50175155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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